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국제사회의 발전 (2) 유럽국제사회 ~ 현재
    국제정치학/국제정치학 총론 및 역사 2022. 10. 21. 19:29

    유럽국제사회, 그리고 발전 과정

      16~17세기 건설되기 시작한 고전 유럽 국제사회는 18~19세기가 되어서야 완성. 그 바탕이 되었던 근대 영토국가는 이탈리아의 르네상스와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의 파생물(derivative). 유럽의 새로운 국가 지배자들은 이탈리아를 본받음. 그 결과 통치술을 포함한 르네상스의 예술과 과학이 서유럽으로 전파됨.

     

      "종교적 사고방식으로부터 정치적 요소들을 해방시키려는 충동"(Wolin 1960: 143)으로 가득한 마르틴 루터의 정치신학은 중세 기독교 제국의 종교 제재로부터 국가의 정치적 정당성을 분리시킴. 따라서 마키아벨리와 루터는 근대국가들의 사회를 건설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

     

      근대에 들어와 세속정치, 특히 국가의 정치와 통치의 기술은 중세 기독교 세계의 도덕적 제한과 종교적 억제로부터 해방됨. 이제 주권국가(sovereign state)는 유럽의 주요 정치집단들 간의 관계를 형성했으며, 유럽 밖에서의 식민지 경쟁을 감안할 때 이러한 관계는 국제관계로 인정받을 만 함.

     

      유럽의 많은 통치자들이 자신의 영토를 확장하려는 야심에 차 있었고, 다른 통치자들은 외부의 침공 세력에 대항해 자신들의 영역을 방어하는데 집중하면서, 국제적 경쟁관계는 심화됨. 그리고 이는 종종 전쟁이나 타국의 희생을 통한 일부 국가들의 확장으로 귀결됨. 또한 일부 전쟁들은 16~17세기 유럽의 기독교 인구를 심각하게 분열시킨 종교개혁으로부터 발발하기도 함.

     

      결국 폭력을 조직하는 형태 자체가 정치 단위로서 국가를 조직하는 동기가 되었고, 찰스 틸리(Charles Tilly)의 유명한 주장대로 전쟁은 국가를 만들었고 국가는 전쟁을 일으킴(Charles Tilly 1990). 그리고 주어진 영토 내 무장 폭력의 충돌로서 전쟁은 주권국가들 간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일종의 국제제도가 됨.

     

      가톨릭교의 합스부르크가(the Habsburgs)는 오스트리아, 스페인, 네덜란드, 이탈리아, 보헤이마, 헝가리 그리고 동유럽과 서유럽의 여타 지역에 흩어진 방대한 영토를 흡수한 한 왕조가 장악. 유럽은 프로테스탄트 개혁과 이에 대한 가톨릭의 반동(Counter-Refomation) 속에서 일부는 가톨릭으로, 일부는 프로테스탄트로 정치 겸 종교(religious-cum-political) 공동체로 분열되기 시작함.

     

      이러한 유럽에 대해 합스부르크가는 자신의 절대주권을 기독교 제국의 이름으로 강요하려고 함. 결국 이 야망은 30년 전쟁(1618~1648)의 참화로 귀결, 합스부르크가의 패배와 함께 1648년 베스트팔렌에서 강화조약을 위한 협상이 진행됨(Wedwood 1992). 이는 유럽을 정치적으로 지배하려는 최초의 도박이 아니었으며, 마지막 도박도 될 수 없었음.

     

      그러나 1648년 이후 국제적 명분을 수식하는 언어는 기독교 통일이나 종교적 정통성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고, 주권국가들로 이루어진 세속사회에 기초한 국제적 다양성을 향해 점차 변화함. 베스트팔렌(Westfälischer) 조약위트레흐트(Utrecht) 조약(1713)은 기독교국에 대해 언급했으나, 이 용어를 사용한 조약으로서는 마지막이었음. 그 사이에 만들어진 역사적 실체는 국가들로 이루어진 세속 유럽 사회였음. 이 속에서는 모든 것에 우선하는 정치적-종교적 권위란 본질적으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

      베스트팔렌 국제사회는 다음의 세 가지 원칙에 기초했다.
      첫 번째는, rex est imperator in regno suo(왕은 자신의 영내에서 황제다), 이 규범이 말하는 것은 주권자는 어떤 상위의 정치 권위에도 구속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모든 왕은 자주적이며 다른 모든 왕에 대해 동등하다.
      두 번째 원칙은, cuius regio, eius religio(지배자가 자기 영내 종교를 결정한다)로, 이것은 외부세력은 종교적 근거로 주권의 관할 문제에 개입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의미.
      마지막 세 번째는, 세력균형으로, 이는 어떤 패권국가가 등장해 여타 국가를 지배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개혁과 반동 간의 갈등은 17세기 중반 프로테스탄트국가과 가톨릭 국가의 공존 원칙을 확립시킴. 이들의 관계에서 본질적인 문제는 종교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으로 인식됨. 전쟁 자체는 종교적 노선이 아니라 정치-영토상의 노선에 따라 수행되었고, 프랑스와 같은 일부 가톨릭 국가들은 가톨릭 합스부르크가에 대항하기 위한 동맹에 스웨덴과 같은 프로테스탄트 국가들을 끌어들이기도 했음.

     

      유럽 국가사회(a society of European states)라는 모델이 작동하는 데 관건이 되는 것은 군사력의 조직을 부단히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 화약의 도입과 공격 기술보다는 수비 기술의 중시로 인해 근대 초기의 유럽에서의 전쟁의 결정력은 약화되었으며, 이러한 사정에 힘입어 유럽에는 많은 국가들이 존립할 수 있었음(Paul Hirst 2001).

     

      또한 반 합스부르크 동맹은 세력균형원칙을 입증. 세력균형은 국가들의 연대를 조직하는 것으로서, 연대한 국가들의 군사적 힘은 정치적 패권이나 제국에 대한 야망에 대항하는 평형추로 작동. 국가 이성의 원칙은 기독교 제국을 지지하는 데 수반되는 그 어떤 의무보다도 우선시 됨. 후자는 도처에서 단지 분쟁의 한쪽 당사의 이데올로기로서만 가능함. 이처럼 종교적 정당성으로부터 세속적 정당성으로의 중심 이동은 향후 국제사회를 위한 초석이 됨.

     

      베스트팔렌조약은 하나의 국제사회에 개별 주권(separate sovereignties)이 존재한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승인. 종교는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 더 이상 개입이나 전쟁을 위한 법적 기초가 되지 않음. 그 결과 하나의 새로운 국제규약이 탄생하게 되었고, 그 기초가 주권국가는 기독교 제국이라는 중세 관념을 대체함. 17세기 국민들이 뿌리내린 국가주권과 내정불간섭의 씨앗은 결국 UN헌장, 제네바협약, 그리고 오늘날의 여타 국제법체계로 발전.

      국제법이라는 신생 관념은 네덜란드의 신교도 외교관이자 철학자인 휴고 그로티우스(Hugo Grotius)에 의해 도출됨. 그는 저서 '전쟁과 평화의 법(Laws of War and Peace)'(1625)에서 국제법의 지적 기초를 세웠음. 이 파급력은 엄청났고, 지금도 국제법의 초석을 마련한 교과서로 여겨짐.
      그로티우스는 어떤 종교적 독트린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즉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 구분 없이 모든 독립국가의 관계를 규율할 수 있는 행동 표준들을 명확히 함으로써 전쟁을 억제하고 평화를 신장하고자 함.

     

     일반적으로 말해 근대 유럽 국제사회는 절차상 베스트팔렌 강화조약으로 출발한 것으로 봄, 이는 적어도 전통적인 관점.

     

      다만, 마틴 와이트(1977: 150-2)는 다소 반대의 관점에서 베스트팔렌조약은 유럽 국제사회의 성숙을 의미하는 것이지 그 도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 그에 따르면, 유럽 국제사회는 교황권을 자신의 영토를 가진 준세속적 정치권력으로 변화시킨 콘스탄스 회의(the Council of Constance, 1415)로부터 시작됨. 한편, 힌슬리(F. H. Hinsley 1967: 153)는 근대 국제사회는 18세기에 들어서야 완전한 모양새를 갖추었다 주장. 이전까지는 여전히 기독교 제국이 존재했기 때문.

     

      하지만 어떤 관점을 취하더라도, 베스트팔렌 다국 조약과 그 뒤를 이은 조약들은 세속 국제법 혹은 유럽 공법(public law of Europe)의 기초로 인식됨(Hinsley 1967: 168).

     

      애덤 왓슨(1992: ch. 17)은 베스트팔렌조약의 요체를 "반패권의 원칙하에 항구적으로 조직된 하나의 유럽의 헌장"이란 말로 매우 적절히 밝힘. 유럽 국제사회가 지녔던 특징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음.

     

    1. 국제사회를 구성하는 국가들의 정치적 독립과 법적 평등은 국제법으로 인정됨.
    2. 모든 구성 국가는 다른 모든 구성 국가가 보기에 정당했음.
    3. 주권국가 간의 관계는 점차 직업 외교관 집단에 의해 관리되었고, 다면적으로 조직된 외교적 의사소통체계에 의해 유지됨.
    4. 국제사회의 종교는 여전히 기독교였지만, 점차 유럽의 문화와 구분하기 어렵게 됨.
    5. 구성 국가 간의 세력균형은 어떤 국가라도 패권을 장악하려 들지 못하도록 하는 것.
    6. 유럽 국가들 간의 전쟁은 위의 결과 이제부터 식민지에 대한 영향력(influence)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으로, 지구의 남쪽에서 발발하는 경향을 띠게 됨.

     

      주요 강대국들의 상쇄 동맹(countervailing alliance)은 모든 구성 국가의 자유를 보장하고 다원주의의 유럽 국제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을 지님. 그 바탕에는 반패권(anti-hegemonial) 관념이 존재. 이 관념이 제대로 작동하는 데에는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했고, 완전히 이론화된 것은 먼 미래의 일이었음.

     

      20세기 전, 유럽 세력균형에 대한 역사상 가장 큰 위협은 나폴레옹의 기도(1795~1815), 18~19세기 영국은 종종 패권국가(hegemon), 특히 혁명 후 나폴레옹 치하의 프랑스에 대항하기 위해 형성된 제휴 세력에 군사적 힘(특히 해군력)을 실어줌으로써 세력균형의 수호자 역할을 자청함.

     

      이후에 이 역할은 미국이 대체, 나치 독일과 일본제국에 대항한 제2차 세계대전과 공산 러시아에 대항한 냉전에서 유사한 역할을 수행. 영국과 미국은 모두 혁명 이데올로기에 대항하여 국제사회의 원칙을 수용하고 이를 실제로 지키려 했다는 점에서, 용어가 지닌 고전적이고 정치적인 의미에서의 패권국가라 볼 수 없음.

     

      물론 이런 식으로 유럽 국제사회의 기원을 이해하는 것이 역사적으로 정확하지 않다고 보는 일부 학자들의 견해도 언급할 필요가 있음. 스티븐 크래스너(1999)는 가장 자주 언급되는 주권국가의 특징들(영토, 자치, 승인과 지배)은 유럽사와 세계사를 통해 나타난 국가의 현실적 지위를 정확히 기술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 크래스너는 권위적인 국제제도가 존재하지 않고 국가들 간의 권력이 비대칭적이라는 사실에 비추어 베스트팔렌식 국제법적 주권이라는 것은 대규모의 '조직된 위선(organized hypocricy)'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주장.

     

      실제로 국가들은 많은 사람들이 가정하듯이 결코 주권적이지 못했음. 따라서 국제정치학도들이 해야 할 하난의 숙제는 이론적 모델, 특히 세계를 기술하기 위해 사용하는 국제사회의 개념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정확한 것인지 평가하는 것.

     

      이러한 반론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의 이론과 실제가 법적-정치적 토대를 갖춘 명백한 규약으로서 최초로 충분히 분명하게 개념화된 것은 유럽 주권국가들 사이에서 라고 요약 가능.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는 공화제와 혁명으로 무장한 프랑스가 군주제와 왕조가 지배하는 유럽에게 가하는 위협을 관찰하고, 19세기 유럽은 "지역 관습과 지방제도에 어느 정도 다양성을 지닌,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동일한 일반법의 토대 위에 세워진 하나의 거대한 국가"라고 말하기도 함.

     

      버크는 유럽 국제사회가 두 가지 원칙에 기초한 것으로 봄. 하나는 '관념의 법(law of neighbourhood)'으로서 이웃 국가들을 인정하고 그들의 독립을 존중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분별의 원칙(rules of prudence)'로서 정치가의 책임에는 국가이익을 수호하는 것만이 아니라 국제사회를 유지하는 것도 포함된다는 것(Raffety 1928: 156-61).

     

      비슷한 의견들이 당시 유럽의 많은 국제법학자에 의해 개진되었으며, 근대 국제사회가 그 뿌리를 유럽인들의 정치문화와 정치적 사고방식에 두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음.


    국제사회의 지구화, 현대의 세계사회

      유럽의 정치질서가 유럽 너머로 확대되는 것은 15세기 후반에 시작해 20세기 초반에 끝. 이는 유럽 제국주의의 팽창일 뿐만 아니라 훗날 국제 사회의 팽창을 의미하기도 함(Bull and Watson 1984). 실제로 유럽 제국주의의 역사와 국제사회의 지구화는 근본적으로 서로 얽혀있음.

     

      유럽의 경쟁은 유럽의 야망과 권력이 펼쳐질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궁극적으로 지구 규모에서 이루어짐. 이 기간 동안 자본주의(capitalism)의 논리가 뜻하는 것은 유럽 국가들이 경제적으로 바람직하고 군사적으로 유용한 지역에 침투하여 그 지역을 통제하기 위해 세계 도처에서 서로 경쟁에 돌입했다는 것. 따라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에서 유럽 세계의 역사와 비유럽 세계의 역사는 근본적으로 얽혀있지만, 그 연관된 방식은 유럽의 '국가들의 사회'라는 전통적인 이해 기준만으로는 포착할 수 없음(Keene 2002).

    유럽중심주의에 관한뷰전과리틀의 견해
      유럽중심주의(Eurocentrism)는 사회과학의 모든 분야에 관계되어 있다. (...) 일견, 오늘날의 국제체계가 출현하게 된 경위에 대한 친숙한 유럽중심적인 해석에는 부적합한 면이 없어 보인다. (...) 유럽인들은 모든 대륙을 점령했고, 영토 경계, 무역 경제 그리고 식민지 통치 등의 시스템을 이식시켰다. 식민지 상태로 전락하지 않은 몇 안 되는 곳들(일본, 샴(태국), 페르시아,튀르기에,중국)은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유럽 모델을 채택해야만 했다.
      그러나 (...)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과거의
    상당 부분을 무시하거나 왜곡할 경우에만 가능한 일이다. (...) 실제로국제체계라는 관념의 기원과 의미를 탐구하고 현재 국제체계에 어떠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충분히 이해하려면 비유럽의 차원을 포함시켜야 한다(Buzan and Little 2000: 20).

     

      유럽 내 강대국들 간의 대규모 전쟁은 19세기까지는 유럽 밖에서 발발. 점령과 정복 아래 여러 식민지들이 탄생했고, 때로는 다른 유럽 국가로 소속이 변경되기도 함. 19세기, 원래는 나폴레옹을 격퇴하기 위한 영국, 오스트리아, 프러시아, 러시아가 제휴한 '유럽협조체제(Concert of Europe)'라는 일종의 세력균형체제는 유럽 너머로의 경쟁적 팽창 과정에서 이들이 서로 전쟁을 피하기 위함이었음. 이는 "이전의 여러 세기 동안 해외에서 서로 행한 끊임없는 전쟁행위"와 대비(Watson 1992: 272). 또한 이는 결과적으로 비유럽인들이 겪은 사회적-경제적 참화와도 대비됨.

     

      다만 비유럽 국가 모두가 유럽 제국주의 국가의 정치적 지배 아래 놓인 것은 아니었음. 하지만 유럽의 지배를 벗어난 국가일지라도 국제법을 수용하고 유럽이 규정한 국제사회의 외교관행이 강제됐음.

     

      지리적-인종적으로 부분적 유럽 국가인 오토만 제국(현 튀르기에)은 유럽 국가들이 정의한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행위 표준을 받아들이지 않음. 다만 유럽 국가들을 자신의 이슬람 관점에서 대하려고 했고, 이슬람교도로서 유럽인보다 우월하다는 견지 아래 기독교 협약 및 이후 유럽 국제사회와의 거리를 유지. 15세기 중반부터 17세기 말까지 이들의 힘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엔 유럽 국가들을 이슬람식으로 호령할 수 있었으나,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오랜 쇠퇴의 결과로 유럽 국가의 국제법과 여타 명령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음.

     

      또한 일본의 경우, 근대 강대국이 되는데 필요한 인적-물적 요소들을 성공적으로 수용해, 20세기 초 러-일 전쟁에서 러시아 제국을 패퇴시키고 스스로 식민지주의 강대국이 됨. 그리고 중국의 경우 유럽 국가들과 미국, 일본으로부터 영토적 침해를 광범위하게 받으면서, 1945년 UN 안보리(Security Council)의 상임이사국이 될 때까지 국제사회의 완전한 회원국으로 승인받지 못함.

     

      그밖에 다른 대부분의 비유럽 정치체제들(우리나라와 같은)은 유럽 제국주의에 저항할 수 없었으며, 그 결과 독립을 상실함. 이 경우는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중동의 대부분, 궁극적으로 모든 아프리카, 카리브 해안, 태평양 일대를 망라했음.

     

      국제사회의 지구화의 두 번째 단계는 저항 민족주의와 반식민지 투쟁을 통해 이루어짐. 이러한 저항 속에 토착의 정치지도자들은 탈식민지화(decolonization)와 부분적으로 구미의 민족자결주의(self-determination)에 기초한 독립을 주장. 나아가 모든 문화와 문명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개방된 보편국제사회에 본질적으로 동등한 일원으로 참가하기를 주장(Jackson 1990).

    자결권
      탈식민지화는 1960년 식민지 국가들과 인민들의 독립 조장에 관환 UN총회의 선언(UN 결의 1514호)에서 정당한 원칙으로 승인됨. 이는 "모든 인민들은 자결(self-determination)의 권리를 가지며" 따라서 국제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식민주의가 더 이상 지속되는 것은 (...) UN헌장을 침해하는 범죄이다"라고 선언한 것.

     

      '서구에 대한 반식민지적 항거'는 헤들리 불의 지적대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사회가 팽창하게 된 주요 기제였음.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아프리카의 대부분의 식민지는 주권국가이자 UN의 정식 회원으로 거듭남. 결국 유럽의 식민지였던 제3세계(the Third World)의 탈식민지화로 인해 국제사회의 구성국 수는 50여 개 국에서 160여 개 국으로 3배 이상 증가. 그러나 탈식민지화 이후 서구의 경제-군사적 이익이 지구의 남쪽 국가들에 침투되는 과정은 어느 정도까지는 직접 식민주의 하에 경험했던 것에 필적함(Duffield 2001).

     

      국제사회의 지구화를 완결시킨 탈식민지화의 마지막 단계는 냉전의 종결, 소련의 해체였음. 여기서 자결원칙은 식민지가 아니라 공산주의자들이 1917년 이후 장악하고 유지해온 제정(Tsarist) 러시아 내 경계들에 대해 적용됨. 이러한 제정 러시아 시대의 국경이 새로운 국제 국경이 되었고, 소련의 해체와 동시에 일어난 유고슬라비아, 에티오피아, 체코슬로바키아의 붕괴로 국제사회의 구성원은 180여 개 국 이상으로 증가.

     

      이후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점령하기 전까지만 해도 지구 전체가 하나로 연결된 국제사회, 곳곳에 고립된 토착 정부나 강요된 식민지 관할과 같은 간극도 존재하지 않고, 어떠한 외부의 패권국가도 존재하지 않는 국제사회가 출현함. 이 법률상의 국제사회는 각 지방의 영토주권과 UN 헌장에 그 요체가 구현되어 있는 공통의 법체계에 기초함.

     

      그러나 이라크 사태 이래로 미국의 헤게모니와 절대적인 군사 우위라는 상황에서 '국제사회'라는 개념이 과연 유효한지 의문이 제기됨(Dunne 2003; Barkawi 2004).


    지구 국제사회의 제문제(題)

      UN헌장에 명시되어 있는 것처럼, 현 지구 국제사회의 핵심가치와 규범은 국제평화와 안보, 국가주권, 자결, 불간섭, 무차별(non-discrimination), 그리고 일반적으로 발전단계나 정부형태, 정치이념, 문화양식 혹은 국내적 특징이나 조건과 관계없이 모든 현존하는 국가의 존엄, 통합 및 신성함 등임. 이렇게 볼 때, 이들 가치와 규범은 오늘날 국제사회의 지구규약(gloval covenant)을 구현하며 표현하고 있다 할 수 있음.

     

      다만 이런 식으로 보편적인 국가주권을 구성하는 데에는 심각한 물음들이 제기될 수 있으며, 일부는 역사상 전례가 없는 것들임.

     

    1. 유럽에서 나타난 국제사회의 기원을 감안할 때, 모든 주요 문화와 문명을 초월하여 형성된 지구 국제사회는 이를 지지해줄 공통의 문화적 기초가 결여됨. 오늘날의 지구 국제사회는 유럽-서방 국제사회를 지탱하는데 일조했던 기독교 혹은 유럽 문명에 비견될 만한 범지구차원의 문화적 기반을 갖고 있지 못함. 아마도 자본주의, 인권, 자유민주주의와 같은 서방의 규범(Western norms)과 가치들이 보편화된다면 그 기반을 제공할 수도 있음. 이러한 사항들은 확실히 강대국들이 인정하는 것이고, 비서방세계에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강력한 레짐(regimes)의 의지는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음. 하지만 동아시아 일부 국가와 중동의 많은 국가들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주요 국가들이 이들 가치와 규범들을 추구한다는 암시에 대해 투쟁하고 있는 것도 사실.
    2. 지구 규약이 장래에 지지를 얻으려면, 그 핵심 규범과 가치들이 오늘날 국제사회의 모든 회원국들이 아니더라도 대다수의 국가와 이들을 대표하는 인민들의 이익과 관심을 반영해야 광범위한 지지가 이루어질 것. 이는 자본주의나 서방식 자유민주주의라는 지배 규범들이 서방문화를 비롯한 어느 특정 문화의 규범이나 가치와 별거하거나 최소한의 거리를 둘 것을 요구함. 하지만 이들 국제사회의 규범들이 지구의 남반구(global South)에 대한 지구의 북반구(global North)의 경제적-정치적 지배를 지속시키는 데 기여한다는 점에서 보면, 이 규범들의 기원이 유럽에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분명해 보임.
    3. 법률적으로 세계는 형식상 평등한 주권국가로 나뉘어있지만 구성 국가들 간의, 특히 부유한 OECD 국가들과 가난한 제3세계 국가들 간의 본질적 불평등(substantive inequalities)이 실로 엄청남. 또한 중동의 산유국들 간에서도 커다란 불평등이 존재하며, 부유한 국가가 가난한 국가들의 빈곤(poverty)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전례 없는 국제원조의 이론과 관행은 이러한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함께 등장함. 식민지 착취 시대가 끝난 직후 등장한 빈국 문제에 접근하는 전통적 기풍은 국가적 자립(national self-reliance)과 상호성(reciprocity). 반면, 부국들이 보여주는 새로운 기풍은 국제적 자선과 비상호성. 하지만 이는 역실적, 현재 부국과 빈국 간의 경제적 격차의 확대와 함께 지구의 양극화는 강화되고 있음.
    4. 오늘날 지구 국제사회의 지역적 다양성은 이전의 어떠한 '국가들의 사회'보다 한층 강함. 이 결과 형성된 것이 국제적 다원주의(Pluralism). 이 기초는 동남아시아, 서유럽,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등과 같이 지리상의 지역을 공유하고 또한 문화적 유사성과 경제적 상호연관성을 가진 지역들(regions) 혹은 국가들의 무리 짓기(groupings)를 사회적으로 이룩하는 데 있음. 세계의 지역-문화 다원주의(regional-cultural Pluralism)가 수용되려면, 서방 민주주의와 같은 특정 문화의 규범과 가치들을 강제함으로써 지구사회관계의 형성이 방해를 받아서는 안됨. 이는 오늘날의 상황을 보면 보다 분명해짐.
    5. 1945년 이후 지구가 주권적 관할지역으로 분화되면서 국가들 간의 경계(boundaries)는 명확히 고착화되고 신성시됨. 이 결과 국가들이 영토 팽창을 목표로 다른 나라를 공격하고 무장간섭하기란 분명히 어려워짐. 하지만 이는 단지 이 과정이 다른 형태로 전개된 것. 법률상 주권 확립의 결과 새로운 관할권을 만드는 것이 어려워졌고, 이는 일부 폭력적 갈등의 직접 원인이 되고 있음. 예시로 사회-정치적 정체성의 변화와 민족자결의 요구에 따라 일부 영토 관할을 재조정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방해받게 되자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코소보 같은 곳에서 전쟁이 발발함.
    6. 불개입(non-intervention) 원칙은 많은 국가, 특히 탈식민지 국가들과 탈공산주의 국가들에게 전통적인 안보 딜레마(security dilemma)가 전도되는 현상을 낳음. 이들 국가의 안보위협은 주로 내부에서 나오며, 전쟁의 형태 역시 주로 내전임. 이들은 종종 수위 실패한 혹은 붕괴된 국가(collapsed states)에서 시민들을 볼모로 잡고 있는 것(Zartman 1995). 비록 강대국들이 보다 약한 나라의 국가주권의 권리를 종종 과도하게 허용하기도 하지만, 불개입의 원칙으로 인해 국제사회가 앞의 문제에 접근하기란 어려워 보임. 소말리아처럼 명백히 실패한 국가(failed states)들에 대해 일종의 국제신탁통치를 실시하는 것 역시 어려움, 신탁통치에 관한 현조의 제도와 법은 독립국가가 아닌 식민지에 맞춰 제작됐기 때문. 이는 2003년 침공 이후 미국의 이라크 점령을 둘러싼 법적 다툼을 부분적으로 설명. 오늘날 국제사회는 실패한 국가의 문제를 다룰 공인된 절차가 없음. 미국과 같은 강대국들의 전략적 이익에 합치될 경우에만 '체제 전환(regime change)'을 강제하기 위해 노력함. 2004년 아이티 민선 대통령 아리스티드(Aristide)의 망명을 도와주기 위한 개입이 그 예시.
    7. 지구 국제사회는 조직 및 규범의 차원에서 일종의 세계사회로 진화 중. 세계 사회는 기존의 국제사회들과 몇 가지 중요한 측면에서 뚜렷하게 구별됨. 예를 들어 인권처럼 인간을 시민권(citizenship)에 관계없이 신성시하고 법으로 보호하고자 하는 세계주의 규범(cosmopolitan norms)이 등장. 또한 환경보호와 같은 지구적 규범의 등장도 주권국가들에 대해 법적으로든 도적적으로든 새로운 책임을 부과, NGOs의 역할이 급속히 증대되고 세계 정치에서 점차 중요해짐. 하지만 많은 관점에서 세계 사회라는 관념은 새로운 위협과 불평등(new threats and inequalities)을 내포, 위에서 말한 보다 긍정적인 규범과도 쉽게 공존하고 있음. 일부 강대국들이 국제환경협정에 따르는 것을 거절하고, 미국이 국제형사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Court)에의 참여도 거부하는 것들이 그 예시.
    8. 국제사회가 세계사회로 진화해가는 경향은 국가주권의 우선적 지위가 계속 유지되는지의 여부에 대해 의문을 제기. 결론적으로 국가주권은 350년간 국제정치를 규정하는 속성이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충분. 하지만 결코 정태적 제도가 아니라, 동태적 제도이며 계속 발전해 나갈 것. 그 증거로 한때는 왕조가 국가주권을 장악했지만, 오늘날에는 전 국민에게 부여된 집단적 권리가 되었음. 또한 한때 주권국가는 스스로 정의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침략전쟁을 주도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으나, 점차 부정되고 21세기에는 소멸됨. 예를 들어, 마틴 쇼(Martin Shaw 2000)초국가적(supernational) 기구들은 새로운 형태의 '국제' 국가 권력(international state power) 혹은 지구-서방국가 집단(global-Western state conglomerate)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라 주장. 또 어떤 사람들은 미국이 중심에 선 새로운 형태의 제국(empire)이 출현하고 있다고 지적함. 이 제국은 새로운 형태의 '포스트모던(post-modern)' 주권을 가지고 있음(Hardt and Negri 2000).

     

     


    참고 문헌

    • 존 베일리스(John Baylis)., 스티븐 스비스(Steve Smith) 편저. 하영선 외 옮김.(2006), 세계정치론 3판(The Globalization of World Politics, 3rd Edition) (을유문화사).
    • 이상구 편저.(2021), 해커스 이상구 5급 국제정치학 (해커스).
    • Watson, Adam(1992), The Evolution of International Society(London: Routledge).
    • Bull, Hedley(1977), The Anarchical Society: a Study of Order in World Politics(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 Armstrong, David(1993), Revolution and World Order(Oxford: Clarendon).
    • Hamilton, K., and Langhorne, R.(1995), The Practice of Diplomacy(London: Routledge).
    • Stern, Geoffrey(1995), The Structure of International Society(London: Pinter).
    • Lyons, Gene M., and Mastanduno, Michael(eds)(1995), Beyond Westphalia(Balitmore and London: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 Buzan, Barry, and Little, Richard(2000), International Systems in World History(Oxford: Oxford Universtiy Press).
    • Keene, Edward(2002), Beyond the Anarchical Society: Grotius, Colonialism and Order in World Politics(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 Drake, Michael(2002), Problematics of Military Power: Government, Discipline and the Subject of Violence(London:Frank Cass).
    www.hyperhistory.com/online_n2/History_n2/a.html
    www.leads.ac.uk/polis/englishschool/wg-his.htm
    www.yale.edu/lawweb/avalon/westphal.htm
    www.oup.com/uk/booksites/politics
Designed by Tistory.